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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뇌 장벽을 뚫는 새로운 유전자 전달 기술이 등장했습니다. 미국 브로드 연구소와 NIH가 공동 개발한 이 방식은 파킨슨병 등 뇌 질환 치료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1. 유전자 치료와 뇌 질환: 가능성과 한계
유전자 치료는 최근 의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 중 하나로, 세포에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교정하거나 새로운 유전자를 삽입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접근 방식입니다. 기존에는 약물로 증상을 완화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치료가, 이제는 질병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죠.
특히 뇌 질환의 경우,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루게릭병(ALS) 등 대부분이 뚜렷한 치료법이 없어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큰 고통을 안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질환들은 종종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 또는 발현 이상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유전자 치료의 잠재력은 매우 큽니다.
그러나 가장 큰 걸림돌은 혈액-뇌 장벽(Blood-Brain Barrier, BBB)입니다. 이 장벽은 우리 몸이 뇌를 외부 물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진화한 시스템으로, 약물이나 바이러스 등 외부 입자가 뇌로 쉽게 들어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문제는 치료를 위한 유전자조차 이 장벽에 가로막힌다는 점입니다. 결국 치료하고 싶어도 전달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죠.
기존의 AAV 기반 유전자 전달 기술은 동물 실험에서는 성과를 냈지만, 인간에서는 BBB를 효율적으로 통과하지 못해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장애는 유전자 치료의 실질적 적용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2. 인간 단백질을 이용한 새로운 AAV 개발
MIT와 하버드대학이 공동 운영하는 브로드연구소의 디버만 박사 연구팀은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고자, 인간의 생물학적 시스템을 역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트랜스페린 수용체 1(TfR1)이라는 단백질이었습니다. 이 단백질은 철분을 뇌로 운반하는 데 관여하며, BBB에 다량 분포해 있습니다.
TfR1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대형 분자의 뇌 전달을 돕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음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TfR1에 선택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AAV를 설계해 바이러스를 통해 유전자를 뇌로 직접 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수천 개의 AAV 변이체를 라이브러리 형식으로 실험하며 스크리닝한 결과, BI-hTFR1이라는 새로운 바이러스형을 도출해냈습니다. 이 AAV는 TfR1 단백질에 매우 강하게 결합하며, 뇌로 유전자 물질을 효과적으로 운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의 ‘무작위 침투’에 의존하던 접근법에서 벗어나, 표적 단백질 기반의 맞춤형 유전자 전달 방식이라는 점에서 큰 진보로 평가됩니다.
3. 생쥐 실험에서 입증된 압도적인 효과
연구진은 먼저 인간 세포 모델을 활용해 실험을 진행했고, 새롭게 개발된 AAV가 혈액-뇌 장벽을 능숙하게 통과함을 확인했습니다. 기존 AAV보다 6~12배 더 많은 양의 유전물질이 뇌세포 안으로 진입했으며, 이는 정량적 분석을 통해 명확히 입증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인간 TfR1 단백질을 발현하도록 조작된 생쥐에게 새로운 AAV를 투입한 결과, 이 바이러스는 뇌뿐 아니라 척수에도 안정적으로 도달했고, 다른 장기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는 기존 AAV들이 다른 기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부작용 우려를 덜어주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AAV가 92%의 성상세포(astrocytes), 그리고 **71%의 뉴런(neurons)**에 성공적으로 유전자를 전달했다는 사실입니다. 두 세포는 뇌 신호 전달, 보호, 대사 조절 등 핵심 기능을 수행하므로, 실제 치료 효과를 끌어내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또한, 파킨슨병 및 고셔병과 연관된 GBA1 유전자를 이 AAV를 통해 뇌에 전달하는 실험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기존 AAV보다 30배 더 많은 복사본이 뇌에 전달되었고, 전반적인 전달 효율이 탁월했음을 입증했습니다.
4. 인간 적용 가능성과 향후 과제
이번 연구에서 개발된 AAV는 기존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어, 실제로 인간 임상 적용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집니다. 기존에는 동물 실험에서만 가능했던 효율을, 인간 단백질 기반의 바이러스를 통해 재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연구계는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AAV는 인간의 TfR1 단백질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인간에게도 동일한 효율을 낼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인간화를 시킨 생쥐에서의 실험 성공이 그 증거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습니다.
- 첫째, AAV는 전달할 수 있는 유전자 크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너무 큰 유전자는 전달이 어렵습니다.
- 둘째, 면역 반응 유발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체내에서 AAV를 이물질로 인식할 경우, 치료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 셋째, 유전자의 비표적 부위 전달로 인한 부작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문제들은 앞으로의 연구 및 임상시험을 통해 단계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분명히 유전자 치료의 임상 적용을 현실로 앞당기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입니다. 뇌 질환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그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출처
-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 Broad Institute of MIT and Harvard
- The BRAIN Initiative®